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크 미처 (문단 편집) === [[레이테 만 해전]] === 미 해군의 방침에 따라 [[윌리엄 홀시]] 제독이 스프루언스 제독과 교대하여 부대를 지휘하게 되면서 3함대로 이름이 바뀌었고, 미처 제독 역시 5함대 소속이었으므로 3함대의 존 매케인 제독과 교대를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미처 제독은 중도 인사 교체로 인하여 임기 1년을 모두 채우지 않았으므로 [[레이테 만 해전]]까지 '''이름만 바뀐''' TF 38을 지휘한다는 결정이 내려져 교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작전이 완료된 후 매케인 제독과 교대하여 후방에서 휴식을 취했다. 레이테 만 해전에서 윌리엄 홀시의 함대는 구리다 함대와 교전한 끝에, 대형 전함 무사시를 격침시키고 구리다 함대를 퇴각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오자와의 항모전단이 미군에게 발견되었고, 그 중에는 진주만 공습에 참가한 항공모함 [[즈이카쿠]]가 있었다. 홀시는 구리다 함대가 확실히 도망쳤고, 전쟁에서 항공모함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었기에 함대를 북상시켜 오자와 함대를 박살내기로 결정한다. 홀시 휘하의 지휘관들이 이 결정에 우려를 표했으나, 그들의 주장은 모조리 추측에 불과했고 확실하게 홀시를 설득할만한 근거가 없었다. 38.2 임무전대의 지휘관인 윌리스 리 제독도 "오자와 함대는 미끼"라는 결론을 내리고 홀시에게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홀시는 매케인의 38.1 임무전대를 제외한 모든 함대를 이끌고 북상한다. 이때 마크 미처 제독은 38 임무부대 지휘관이었으며, 38.3 임무전대의 렉싱턴을 기함으로 삼고 있었다. 그의 참모장인 알레이 버크 대령과 비행단장인 제임스 플래트리는 윌리스 리 제독과 마찬가지로 오자와 함대가 미끼라는 결론을 내리고 마크 미처 제독을 깨웠다. 그러나 미처는 홀시에게 보고했냐고 물었고, 그렇다는 대답을 듣더니 홀시의 성격상 본인이 필요할때나 내 의견을 들을 것이라고 답변하고는 도로 자러 갔다. 이후 홀시의 함대는 즈이카쿠를 포함한 오자와 함대의 항공모함 4척을 모조리 격침시키고 진주만의 복수를 이룬다. 그러나 도망가던 구리다 함대는 홀시의 정찰기가 "이제 쟤네들을 경계할 필요는 없겠다"며 철수하자마자 곧바로 U턴을 하더니 레이테 만으로 쳐들어왔고, 미 해군의 2선급 함대인 태피 3과 마주치면서 사마르 해전이 벌어졌다. 상륙부대 지원임무를 주로 맡던 태피 3의 호위항공모함들은 혼비백산했지만, 그 와중에도 이를 악물고 싸우면서 도망쳤다. 태피 3의 구축함 3척과 호위구축함 1척이 호위항공모함이 탈출할 시간을 벌기 위해 달려나갔지만, 구리다 함대의 전함들 앞에서는 무력했다. 그러나 '''미군의 플레처급 구축함 히어만이 일본의 전함 야마토와 나가토를 어뢰로 전장에서 쫓아냈다!''' 함대 기함을 잃은 구리다 함대는 태피 3을 상대로 온갖 추태를 벌인 끝에 해전에서 패배하고 구리다 턴을 시전하며 도망쳤다. 그러나 38.1 임무전대를 지휘하던 매케인은 홀시에게 불만을 품고 소극적 항명을 하느라 제 위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매케인이 홀시의 명령을 준수했으면 구리다 함대는 태피 3을 건드리자마자 38.1 임무전대의 공격을 받고 박살나거나, 매케인에게 쫓겨서 77.2 임무전대가 있는 남쪽으로 밀려난 후 2개의 함대 사이에 끼어서 박살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태피 3은 혼자서 일본 최강의 함대와 맞서야 했다. 기적적으로 이기기는 했지만, 레이테 만을 비워두는 바람에 태피 3을 포함한 미군이 엄청난 위험에 빠진 데 따른 책임을 누군가가 져야 했고 미 함대의 현장 최고 지휘관은 홀시였다. 당연히 모든 책임을 홀시가 뒤집어썼다. 레이테 만 해전 이후 홀시는 혹독한 비난을 받았지만, 필리핀 해 해전에서 이런 조짐은 이미 보였다. 스프루언스가 '사이판, 티니안, 괌을 일본군으로부터 빼앗아 지키라'는 니미츠의 명령을 지키느라 요격전에만 전념했다가 온갖 욕을 먹었고, 미 해군은 공개석상에서 스프루언스를 옹호하지 않았다. 홀시 자신도 스프루언스의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믿었던 만큼 즈이카쿠를 잡으려고 함대를 북상시키는 것은 당연했고, 그 결과가 사마르 해전이었다. 미처를 포함한 수많은 이들이 스프루언스를 비난한 대가가 레이테 만 해전에서 돌아온 것이다. 실제로 일본군 16전대(기함 [[아오바(중순양함)|아오바]])는 레이테 섬 돌입에 성공했다. 구리다 함대도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었다. 태피 3이 패배했다면 레이테 만은 쑥대밭이 되었을 것이다. 태피 3의 승리로 미군 상륙부대가 살아남은 것은 실로 천운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